■  Special Issue - 희망의 작은 도서관 | 건축가, 아이들과 희망을 나누다
  | 양상현|민족건축인협의회 의장, 순천향대학교 교수

건축가, 아이들과 희망을 나누다

건축의 사회적 역할의 중요성에 대하여 말하는 것은 새삼스러운 일이다. 건축은 원하든 그렇지 않든 직, 간접적으로 사회적 시선에 노출된다. 공간을 생산하는 일인 건축 행위는 그 유한성으로 말미암아 공공의 소용에 부응해야 하는 사회적 성격을 강하게 지니고 있다. 건축이 문화임을 주장할 수 있는 바탕에도 건축이 사회적 공공재로서 존재한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건축 공간의 생산과 소비를 그저 시장의 논리에만 맡겨 둘 수 없는 것도 이러한 까닭이다. 그러나 건축가들에게 주어지는 대부분의 일들은 시장의 논리에 따라 진행되고 있어 건축의 사회적 효용을 입증할 기회는 좀처럼 찾아오지 않는다. 건축가의 사회적 지위를 자리매김하는 것이 녹록치 않은 것은 우리 스스로 공공적 소임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민족건축인협의회(이하 민건협)’의 고민도 이와 같았다. 건축의 공공적 역할과 사회적 성격을 실현하는 일이 민건협 활동의 중심에 놓였다. 십년 넘게 여름건축캠프를 통하여 농촌 마을 만들기를 진행했고, 장애인 주택개조사업(2002, 2003년), 공공 건축 교육활동(문예아카데미 공개 건축 강좌, 어린이 건축캠프, 고등학생 예비 건축대학) 등을 통하여 사회적 참여의 가능성을 모색해왔다. 그 실천을 보다 전문적이고 본격적인 것으로 높이려는 데에 생각이 모아질 즈음 ‘책 읽는 사회 만들기 국민운동(이하 책사회)’으로부터 즐거운 제안을 받았다. 책사회가 추진하는 ‘희망의 작은 도서관 만들기’ 사업에 건축 전문가 조직으로서 힘을 보태라는 청이었다. 어린이들에게 도서관을 만들어 주는 일에 참여하는 것은 설레는 제안이 아닐 수 없다. 더욱이 시골의 작은 초등학교에 도서관을 만드는 일이라니, 그 뜻이 각별했다. 망설일 일이 아니었다. ‘기적의 도서관 만들기’ 등 어린이 도서관 사업을 알차게 진행해 온 책사회와 함께 하는 일이니 믿음도 컸다.
민건협에게 주어진 과제는 열 개 남짓한 시범적 도서관의 설계와 시공이었다. 책사회가 진행하는 이번 학교 도서관 개조 사업 중에서도 그 현장의 조건이 특이하거나 지역(학교)의 기대가 남다른 경우 등 세심한 접근이 필요한 학교들이었다. 그동안 여러 인연으로 민건협과 함께 해온 건축가들이 모여 ‘희망의 작은 도서관 건축설계지원단’을 꾸렸다. 민건협 부의장이자 수림건축 윤의식 소장, 부천대학 실내 건축과 박영호 교수, 동명대학교 건축학과 김의용 교수, 타임스페이스디자인 임학성 소장, 나무아키텍츠 명재범 소장 등이 모였다.
‘의기투합(意氣投合)’이란 이런 상황을 이름일 터였다. 책사회와 함께 국내의 우수 학교 도서관을 탐방하는 것을 시작으로, 어린이 도서관에 대한 워크숍을 진행하는 등 본격적인 도서관 설계에 착수했다. 희망의 도서관 만들기에 참여하면서 아마 어린이들보다 더 희망에 부푼 것은 공공적 프로젝트에 전문적 역량을 쏟는 ‘즐거운 부담’을 만끽할 건축가들이었으리라.

지난 몇 년간 기적의 도서관 사업 등을 진행해 온 책사회와 공공적 건축을 고민해 온 민건협 건축가들의 생각은 어린이 도서관이 ‘즐거운 책 놀이터’에 다름 아니라는 것에 모아졌다. 세 자리 수 덧셈을 어렵게 풀거나 억지로 숙제를 하는 학습장이 아니라 아이들이 앞 다투어 즐겁게 찾아오는 곳, 책을 읽는 행위가 곧 놀이가 되는 공간, 어린이뿐 아니라 교사, 학부모와 지역 주민이 함께 이용할 수 있는 도서관을 만드는 것이 책사회와 건축가들이 함께 세운 목표였다. 이 같은 합의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의 설계 원칙으로 정립되었다.

1. 다층적 공간 구성 다락방, 마루, 작은 방 등 하나의 도서관에 다양한 레벨을 갖는 영역을 분할 배치하여 다채로운 공간을 구성한다. 층고가 높지 않은 초등학교 시설의 제한적 조건 속에서도 작은 방과 다락을 결합함으로써 아이들의 행태에 적합한 공간을 제안할 수 있었다. 다락방에 대한 아이들의 호응은 가히 전폭적이다. 위에서 내려다보거나 작은 방에 숨거나 혹은 열람석에 앉는 등 다양한 공간 체험이 벌어짐으로써 도서관 안에서 특정한 장소를 선택하여 책을 읽는 것은 즐거운 공간 놀이가 된다. 한 어린이가 쓴 희망의 도서관 이용 수기다.
“...하늘자리(다락방)에 있게 되면 정말 기분 좋다. 그리고 누구는 무얼 하는지 누구는 어떤 책을 보는지 도서관의 공간을 한 번에 알 수 있다. 하늘자리는 그 곳에서 책을 보는 데 꼭 공중에서 책을 읽는 것처럼 상쾌하다. 그 공간은 친구들과 오순도순 책도 보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최고의 공간이다...”

2. 편안하게 책 읽기 집에서 책을 읽는 것처럼 편안한 공간을 만든다. 눕거나 엎드려 책을 보거나 혹은 푹신한 소파에 몸을 맡기고 책을 읽을 수도 있다. 바닥 난방을 채택한 좌식 공간을 두어 따뜻한 공간을 제공했다. 더 이상 딱딱하게 정자세로 앉아 책을 읽을 필요는 없다.

3. 복합 문화 공간 구현 모둠학습 공간을 두어 지역에 부재한 문화 공간에 대한 요구에 부응하게 한다. 이제 도서관은 마을 영화관이자 아이들의 재롱잔치 공연장이 될 수도 있다.

4. 유희 요소의 도입 아이들이 흥미를 느낄 수 있는 다양한 공간적 장치가 마련되었다. 미끄럼틀, 그네, 터널에서 심지어는 개구멍까지 아이들이 좋아하는 요소들이 각 도서관의 상황에 맞게 삽입되었다. 자칫 산만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는 일시적인 것이다. 아이들은 이내 장소에 걸맞게 행동한다.

5. 도서관 가구의 혁신 이동형, 벽부형 서가, 소파 삽입형 서가, 좌탁, 스탠드형 신간열람석 등 기존의 일률적 형식을 탈피한 다양한 가구를 마련한다. 아이들의 욕구와 눈높이에 맞는 흥미로운 제안이 실현되었다.

6. 주민결합형 도서관 학부모, 지역주민과 교사를 위한 별도의 공간을 구비한다. 시골에서 초등학교는 지역 공동체의 중심이다. 말 그대로 도서관이 지역민의 일상적인 문화 사랑방으로 기능하도록 한다. 아울러 이러한 장소는 방과 후에 마땅히 갈 곳이 없는 벽지 초등학교의 교사들에게 연구와 쉼터의 기능을 제공하는 작은 ‘북 카페’가 된다.

이상과 같은 설계 원칙은 각 도서관의 여건에 맞게 변이되어 다양하게 구현되었다. 각인각색이라던가. 원칙과 지향은 동일했지만 건축가들의 생각은 역시나 다채로웠다. 형태 언어와 공간 구성의 문맥은 각 건축가의 해석에 따라 변용되어 각각의 초등학교가 갖는 지역적 특성과 학교 여건에 따라 도서관의 모습은 완연히 달라졌다. 공공적 지향을 공유하면서 건축가 집단이 동시 다발적으로 전국에 걸치는 희망의 공간을 만들어 낸 것은 건축의 사회적 소임에 답한 하나의 건축적 사건이라 부를 만하다. 그리고 그 사건에 참여한 건축가들은 모름지기 그로 인하여 행복한 경험을 선사받았다. 학교가 파해도 집에 가지 않고 책을 읽는 아이들의 눈길에서 우리는 쏠쏠한 희망을 본다. 고마울 따름이다.


어린이의 도서관 이용 수기
민건협의 설계단에 의해 만들어진 희망의 작은 도서관을 이용하고 있는 어린이들의 글이다.

“...저희 학교에 희망의 도서관을 만들어 주신 분께 정말 감사합니다. 옛날과 지금은요, 완전 달라졌습니다. 옛날 도서관은 너무 춥고 썰렁하고 책도 별로 없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책도 많고 방석도 있고 재미있는 완벽한 도서실이 되었습니다. 누워서 보고 싶으면 보고, 보고 싶은 책이 있으면 검색하고 정말 좋아졌습니다. 그리고 영화 보고 싶을 때는 볼 수 있습니다. 노래도 들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정말로 원하는 꿈의 도서관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밖에서 맑은 공기를 마시며 책을 볼 수도 있습니다. 우리의 상상의 도서관이 생긴 것입니다. 난 씨앗자리(작은 온돌방)가 제일로 좋습니다. 씨앗자리는 따뜻하고 담요 있고 곰돌이 인형도 있습니다. 배게도 있습니다. 정말 좋다. 미끄럼틀도 있다. 정말 좋은 도서관이다. 책은 마음의 양식이다. 남은 시간은 2년 동안에(5학년 어린이임) 책을 한번 100권정도 읽어 보기에 도전하고 있다. 그만큼 책도 많다는 것이다. 다른 학교에서도 많이 놀러 온다. 우리 도서관이 엄청 좋아지면 정말 많은 사람들이 우리 학교에 올 수도 있다. 우리 학교가 이런 멋진 도서관이 있는 게 정말 자랑스럽다. 난 우리 초등학교 도서관에 있는 책을 잘 끝까지 읽고 찢지 않고 내 책처럼 소중하게 읽고 감사하게 읽겠다. 감사합니다.”

“우리 도서관은 어떤 학교라도 자랑스럽고 예전학교 도서관은 불편한 게 많았다. 하지만 지금 도서관은 맨 처음 보았을 때부터 마음에 쏙 들었다. 그리고 제일 편하고 좋은 것은 춥지도 않고, 무엇보다 좋은 것은 참 편안하게 책을 읽을 수 있어서 좋고, 우리를 위해 이 도서관을 만들어 주신 아저씨들과 선생님 학부모들께 정말 감사드리고... 지금부터 나도 책을 더 열심히 읽어 공부를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리고 **초등학교 도서관을 웃게 하는 제가 되겠습니다.”

“....(도서관이) 좋은 이유를 100가지면 100가지, 1000가지면 1000가지 모두 쓸 수 있다. 나는 서울 대도시에 있는 학교보다 작고 아름다운, 멋있는 학교 도서관이 좋다. 도서관을 이용해 보면서 내가 읽고 싶던 여러 가지 재미있는 책들을 읽을 수 있다는 그 만족감, 우리 소수의 학생들만 보고 느끼고 체험하기 아까울 정도의 훌륭한 시설의 도서관을 보면서 우리학교는 대한민국, 아니 세계 최고의 학교라는 것을 느꼈다. 도서관이 너무너무 좋다.”

희망의 작은 도서관 건축설계지원단
삼성사회봉사단, 한겨레와 함께 ‘희망의 작은 도서관 만들기’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책읽는사회는 앞서 전국 8곳에 ‘기적의 도서관’을 건립한 경험을 바탕으로, 이번에도 건축 전문가의 도움을 요청했다. 이에 참여를 의뢰받은 민족건축인협의회가 건축가들을 모아 만든 설계단이 ‘희망의 작은 도서관 건축설계지원단’이다. 이에 본지에서는 심사에 통과한 초등학교 도서관 중 10여 개 시범대상 학교의 도서관을 설계 시공한 설계지원단의 작업을 소개하고자 한다(순서 무작위). <편집자 주>

양상현 Yang Sang Hyun
현재 민족건축인협의회 의장이며 순천향대학교 건축학과 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대한건축학회 논문상(2000) 수상 및 주요 저서로 <거꾸로 읽는 도시 뒤집어보는 건축>(동녘출판사)이 있으며, 주요 작품으로는 <장암리 주택>, <녹촌리 조각가의 집> 등. 전화: 041-530-1349, 이메일: sonamu@sch.ac.kr

박영호 Park Young Ho
홍익대학교 건축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주)정림건축 디자인실 디자이너로 활동했다. 현재는 (주)하리디자인 건축사무소 소장과 부천대학 실내건축과 교수를 역임하고 있다. 주요 작품으로는 <김대중 컨벤션센터>, <힐튼그랜드호텔 컨벤션센터>, <상해홍교역사> 국제현상설계, <관악 농협백화점> 턴키현상설계, <두레종합건설 사옥>, <해모수 한의원> 등이 있다. 전화: 032-610-3336, e-mail: parkyh@bc.ac.kr

명재범 Myung Jae Bum
고려대학교 공과대학 건축공학과 졸업 및 동 대학원 건축계획 석사 취득. (주)정림건축 종합건축사사무소 재직 당시 프로젝트 매니저 및 디자이너로서 다수의 프로젝트에 참가했으며, 현재는 나무 아키텍츠 건축사사무소의 공동대표이자 충북대학교 건축학과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주요 작품으로는 <김옥균 생가 기념사업> 기본계획(건축기획안), <대전 판암동 M 씨 주택> 계획 설계, <광주하남 복합상가> 계획 설계(우선협상대상자 선정), <대전 가오컴플렉스> 인테리어, <창동 어린이도서관> 현상설계 등. 전화: 02-742-7745, 이메일: mooksu@hotmail.com

윤의식 Youn Oui Sik
성균관대학교 건축공학과 졸업. 현재 (주)수림건축사사무소 대표이자 순천향대학교 건축학과 겸임교수, 민족건축협의회 부의장이다. “건축, 그 실천과 전망” 진흥아트홀 전시회 참가(2005), 경원대학 건축과 출강 등으로 활동했으며, 주요 작품으로는 <부천 시티백화점>, <수지 기현이네 집>, <묵리 아미치미에 까페> 등. 전화: 02-031-339-3311~3, 이메일: arch21@kornet.net

임학성 Lim Hakseung
(주)로프트디자인 대표이사이자 (주)다원커뮤니티 이사, 민족건축인협의회 상임위원. ‘희망의 작은 도서관’ 건축설계지원단으로 활동하며 <안산 대남초등학교 갯벌의꿈 도서관>, <화성 장안초등학교 석포분교 희망의 도서관>, <당진 고산초등학교 산마루 도서관> 등의 디자인을 설계했으며, 그 외 <충남 부여 석양초등학교 바윗골 도서관>(설계: 윤의식), <충남 아산 송남초등학교 솔향글누리 도서관>, <전남 담양 고서초등학교 씨밀레방 도서관>(이상 설계: 양상현) 등에서도 시공을 담당했다. 전화: 02-2661-1019, 이메일: loftman@paran.com

김의용 Kim Eui Yong
명지대학교 공과대학 건축공학과와 동 대학원, 이탈리아 국립 베네치아 건축대학(IUAV)을 졸업했다. 현재 동명대학교 건축대학 교수이며 도시건축연구실(SdUA)를 운영하면서 지속적으로 건축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2005년 서울에서 건축 작품 개인전을 가졌으며, 같은 해 4월 <경계에서>라는 건축저서를 발표했다. 주요 작품으로 <백남준 박물관> 국제현상설계 입선, <꿈의 도시 제천 만들기> 현상설계 당선, <울산광역시 선관위 청사> 현상설계 가작, <부산 추모공원 납골당> 현상설계 당선작 등. 전화: 051-610-8584, 이메일: kiuav@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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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남초 솔향글누리도서관 양상현|순천향대학교 건축학과
고서초 씨밀레방도서관
맹동초 함박도서관 박영호|부천대학 실내건축과+(주)하리디자인
문백초 육남매도서관
삼우초 만남도서관 명재범|나무아키텍츠+장석현|(주)가오디자인
석양초 바윗골도서관 윤의식|(주)수림건축사사무소
대남초 갯벌의꿈도서관 임학성|(주)로프트디자인
상동초 반디도서관 김의용|동명대학교 건축대학
원동초 늘벗골도서관
덕천사회복지관 꿈밭도서관
예하초 글새암 도서관

건축문화편집부 (archious@ancbook.com)
건축문화 2007년 4월호 [Special Issue]페이지 © anc건축문화